[빅데이터 연재/기고 ]
데이터의 연결망, 연결된 우리
인류세를 맞이한 빅데이터
최정호
빅데이터 혁신공유대학 사업단 / 법학박사
더글러스 애덤스의 소설 <은하계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서는 Deep Thought라는 이름의 컴퓨터가 등장합니다. 마치 신격화된 이 존재로부터 인생의 의미를 찾고자 질문을 던졌는데, 750만 년 뒤에 ‘42’라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대답이 엉뚱하게 들렸다고 당황하지 마세요. 의도한 것일 테니까요. 아마도 저자는 인생의 의미를 기계장치가 스스로 완벽하게 끌어낼 수는 없다는 점을 드러내고 싶었던 것 같아요.
빅데이터를 활용한 기계가 고도로 발전하더라도 그것이 우리에게 삶의 가치를 알려주는 데에는 한계가 있어요. 그래서 저는 ‘기후위기와 빅데이터’ 마지막 연재 시간에 여러분에게 이런 질문을 드리고 싶어요. 빅데이터가 왜 궁금하세요? 아마 여러분은 42라고 대답하진 않을 테지요. 그것이 무엇이든 답을 찾아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매우 성실한 삶을 통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유대인 학살에 혁혁한 ‘공’을 세운 아이히만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내가 하는 일이 무엇에 기여하고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생각할 의무일 겁니다.
사실 저는 여러분이 빅데이터에 관심을 갖고 그것을 배우고 활용하려는 그 순간 사이보그가 된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빅데이터이기 때문에 막대한 양의 정보를 다루고 분석해내지만, 동시에 사람이기에 질문을 던지고 정보를 선별하고 마지막으로 의사결정을 합니다. 따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구성하고 의존합니다. 그만큼 여러분의 역할도 중요하지요.
그래서 빅데이터는 다른 모든 문제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지 무엇을 추구하는지와 같은 이른바 인문학적 질문과 함께합니다. 우리가 기후위기를 빅데이터와 엮어가며 이야기한 것도 마찬가지랍니다. ‘위기’라고까지 불리는 자연환경 변화는 꿀벌 실종과 같은 생물다양성과도 관련되고, 기후소송과 같은 새로운 소송유형을 탄생시켰고, 사회 불평등을 드러내기도 더 키우기도 했습니다. 이런 데이터를 분석해서 나오는 지식정보, 즉 ‘인사이트’를 도출하기까지 우리는 어떤 정보를 추가하거나 가공하거나 배제했을까요? 또 데이터분석에 따른 의사결정은 어떻게 내려질까요? 나아가 우리는 애초에 무엇이 문제라고 보아서 문제를 들여다보기로 했던 걸까요?
하나의 예를 통해 여러분의 생각에 도움을 드리고 싶네요. 오늘날 ‘공장식 축산’이라고 부르는 밀집사육 방식이 보편화되어 소, 돼지, 닭과 같은 동물은 자기 삶을 살지 못하고 온전히 ‘고기’가 되기 위한 도구적 존재로 대우받고 있어요. 더 많은 고기, 우유, 달걀을 ‘생산’하기 위한 매우 ‘합리적’ 이유에서죠. 좁은 공간에서 더 많은 고기를 얻고자 동물들은 몸 하나 돌리지 못할 좁은 공간에 갇혀 지내고, 평생 강제 임신을 당하고, 성장촉진제를 맞아 관절이 못 버틸 만큼 살이 찌고, 생일을 맞아보지 못한 채 생후 몇 개월 만에 처음으로 빛을 보며 도축장으로 끌려갑니다. 당연히 주변 자연이 감당하지 못할 메탄과 배설물, 그리고 각종 폐기물이 나오고, 면역력이 떨어져 병에 쉽게 걸리는데, 그러다 특정 질병이 집단 발병되면 전부 죽입니다. 그래야 보상금이 나오니까요. 그렇게 동물을 집단 생매장한 땅에서 침출수가 흘러나오고 썩은 땅에 풀 한 포기 자라지 못하는 문제는 이미 언론에 많이 보도되었어요. 하지만 많은 이들이 더 많은 고기를 원하고 있고 급기야 아마존 숲을 태워 밀집사육할 공간과 사료로 쓰일 곡물을 키울 밭을 만듭니다.
이 상황에서 ‘기후위기는 탄소 배출을 0으로 만들면 해결된다’는 단순한 사고로 문제를 설정한다면 읽기 불편했을 저 긴 문장에서 오직 ‘아마존 숲’과 ‘메탄’만 의미있는 데이터라고 보게 됩니다. 지구상 척추동물의 97%는 인간과 가축이고 야생에서는 3%만이 산다는 수치는 큰 의미를 못 갖습니다. 결국 탄소를 잘 흡수하는 기술만 만들면 되고, 그런 기업을 육성하면 된다는 의사결정으로 이어지겠지요.
우리가 이야기한 기후위기는 하나의 현상에 불과하고, 생물다양성, 폐기물 문제 등 많은 지구적 현안이 함께 얽혀 있고, 그 이면에 작동하는 많은 인간중심적 논리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마치 데이터의 연결망처럼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존재예요, 아니 별개의 존재로서 영향을 주고받는 수준을 넘어 내가 곧 빅데이터이듯, 하이브리드 존재들입니다. 지구라는 공간은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유엔은 지속가능발전목표를 통해 제시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 핵심에는 지구에서 성장의 한계가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해요.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요? 제가 들었던 예시에서는 비거니즘, 즉 동물 착취를 않는 것이 기후위기와 연결되는 중요한 노력이에요. 그리고 GDP와 성장에 눈이 먼 경제가 전환되는 것도 중요하겠지요. 너무 어렵게 느껴지나요? 그래서 우리는 인류가 야기했고 지구상 여섯 번째 멸종인 인류세를 살고 있어요. 빅데이터이며 지구인 동시에 또 사람인 여러분은 그리고 또 저는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 싶습니다.
▲ 지구공동체에서의 연대 ⓒ 최정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