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와 빅데이터1]
"난 이제 지쳤어요 땡벌!"
사라지는 꿀벌, 수박 없는 여름
최정호
빅데이터 혁신공유대학 사업단 / 법학박사
올해 초 집을 나선 일벌 78억 명*이 끝내 돌아오지 못하는 일이 발생했어요. 바로 ‘꿀벌 집단 실종’, ‘꿀벌 실종 미스터리’라 불린 사건인데요. 한국양봉협회는 올 3월 2일 기준으로 전국 양봉 농가 약 2만3천 가구가 보유한 약 227만 개 벌통 중 17.2%를 차지하는 4,17가구의 약 29만 개 벌통이 피해를 보았다고 주장했어요. 이런 현상을 정확히는 군집붕괴현상(Colony Collapse Disorder, CCD)이라고 불러요. 무리 지어 사는 군집에서 꿀벌이 갑자기 사라지는 현상을 뜻하지요. 이 현상은 이미 2006년 미국에서 처음 보고된 뒤로 세계 각국에서 발생하고 있어요. 급기야 2017년 UN은 5월 20일을 세계 벌의 날을 지정하여 벌의 중요성을 알리기로 했지요.
*인간과 함께 지구 공동체를 살아가는 비인간과의 ‘종평등’한 관계를 지향하고자 ‘마리’ 대신 ‘명’이라는 단위를 사용했습니다.
<5월 20일을 벌의 날로 채택하기로 한 UN 총회 결의안(A/RES/72/211)>
꿀벌은 어째서 돌아오지 못한 걸까요? 올 3월 발표된 민관합동조사결과에 따르면 꿀벌응애류, 말벌류에 의한 폐사 외에 이상기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해요. 우리는 이 중 기후변화에 따른 이상기상 요인에 주목합니다. 기후변화는 그 자체 중요하기도 하고, 다른 요인의 부정적 영향을 더 크게 만들기도 하기 때문이에요. 기후위기는 언젠가 다가올 위협이 아니라 이미 우리가 맞닥뜨린 현실이었습니다.
이상기온으로 인해 지난 2년 동안 2~4월은 기온이 높다가 5·6월에는 기온이 뚝 떨어졌다고 해요. 2~4월 기온이 높아지며 꽃이 일찍 피었고요. 5~6월은 꿀벌이 좋아하는 아카시아꽃이 피는 시기인데 이때 비가 내리고 강풍이 부는 저온 현상이 나타나서 충분한 꿀을 만들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꿀벌이 꿀을 충분히 먹지 못하면 면역체계가 약해집니다.
또 여름이 길어지면서 꿀벌에 기생하는 가시응애가 살기 좋아져 그 수가 늘어났고, 농가에서는 대응하기 위해 뿌린 독한 살충제는 어린 꿀벌은 죽게 했어요. 그리고 가을에 이어진 이상고온과 이어진 한파로 들쑥날쑥한 날씨도 문제였어요. 따듯할 때 본능적으로 나온 벌이 추위로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지요.
이제 시원한 수박 없이 지내야 할 여름도 머지 않았네요. 꿀벌은 꽃가루를 옮겨 식물이 열매를 맺을 수 있게 해주는 화분 매개자(pollinator) 중에서도 매우 중요하거든요. 살충제를 대량 살포했다가 꿀벌이 사라져서 사람이 수분 매개자 역할을 했던 중국 쓰촨성의 사례는 매우 유명하지요. 사람이 대신 꽃가루를 옮길 수도 있지만 그러면 인건비가 치솟아 가격을 감당하기 어려워져요. 게다가 수박 못 먹는다고 볼멘소리할 때가 아니에요. 꿀벌 개체수가 급격히 줄면 꿀벌을 먹고 사는 작은 동물들을 시작으로 전체 생태계가 위협을 받기도 하니까요. “꿀벌이 멸종하면 인류도 4년 안에 사라진다.”는 말이 유독 자주 들리는 요즘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차근차근 대안을 찾아 나가려 합니다. "땡벌"이라는 노래의 끝은 “당신을 사랑해요 땡벌”이 아니던가요? 흥미롭게도 빅데이터를 이용한 양봉이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어요. 예를 들어 이번 꿀벌 집단 실종을 겪은 후 전라남도는 꿀벌 활동 생체 정보 등 빅데이터를 이용한 스마트 양봉 기술을 도입하겠다고 했어요. 지금은 데이터를 모으는 단계라고 하고요. 우선 온도와 습도, 이산화탄소 농도, 벌통의 진동과 중량 등을 관찰할 수 있는 센서, 꿀벌의 활동을 관찰할 수 있는 카메라와 체온을 측정하는 열화상 카메라, 꿀벌 소리를 측정할 수 있는 지향성 마이크를 설치하고요. 벌통 입구에 설치된 카메라와 디지털 센서를 통해 벌의 활동량이 떨어지거나 움직임에 문제가 있으면 벌의 생활환경을 예측한다는 것이에요.
물론 스마트 양봉 기술이 기후위기와 ‘꿀벌 집단 실종’을 둘러싼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을 거예요. 꿀벌 뿐만 아니라 ‘땡벌(땅벌)’과 같은 야생벌의 개체수도 급격히 줄었고, 더 넓게는 곤충 자체가 이미 많이 줄었기 때문이에요. 도시의 가로등 아래 떼 지어 날아다니는 모기와 나방의 모습도 무궁화꽃 여기저기 붙어있던 풍뎅이와 벌의 모습도 이제는 찾아볼 수 없게 되었지요. 기후재난도 생태계 교란도 이미 진행 중이고 또 심해지는데, 단지 꿀벌을 관찰하고 적응력을 키우고 양봉산업을 살리는 것에 그친다면 원인에 접근할 수 없을거에요.
우리는 문제의 근본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은 부분만이 아니라 전체를 바라보고, 기술에만 의존하지 않고 생활양식과 세계관을 근본적으로 바꿀 때 가능해질 겁니다. 물론 이때에도 빅데이터는 우리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거예요. 어쩌면 우리 눈앞에 보이지 않는 정보를 빅데이터가 알려줄지도 모릅니다. 빅데이터와 함께 벌의 목소리를 들어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