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기고]
빅데이터로 본 젠더 이슈
젠더폭력과 빅데이터
- 젠더폭력을 해결하기 위해 빅데이터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나 -
2019년 경찰청은 ‘지하철 디지털 성범죄, 빅데이터로 잡는다’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냈습니다. 국가 치안 업무를 담당하는 경찰청이 국내 통신사 KT와 협업하여 수도권 지하철역 또는 역 출구의 위험 등급을 표시한 지도를 만들겠다는 내용이었어요. 이듬해 2020년부터는 계획대로 행전안전부가 제공하는 생활안전지도 사이트에서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게 되었답니다. 어떻게 표시되는지 2021년 3월 기준으로 2호선 서울대입구역의 정보를 찾아보니 다음 그림과 같았어요 (2021년 9월까지만 선택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림1] 행전안전부 생활안전지도에서 확인 ‘서울대 입구역의 지하철 성범죄위험도‘ (출처: 행정안전부 생활안전지도 갈무리)
오른쪽 아래 ‘도움말’을 클릭해보면 “과거 범죄발생빈도, 유동인구수, 시간대별 인구 구성 비율, 혼잡도 등의 환경적 요인과 노선별 특성, 계절적 특성 등을 이용“했다고 설명합니다. 이처럼 다양한 요소들을 나타내는 데이터를 종합적으로 분석하면 지하철에서 성범죄 위험도를 예측해볼 수 있을 거예요.
비슷한 시기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해서 웹하드에 게시된 불법촬영물을 신석히 파악하여 삭제를 지원하는 시스템을 개발했다고 밝혔습니다. 2022년에는 서울시가 디지털성범죄 피해영상물을 자동검색하는 인공지능 기술을 지자체 최초로 개발했다고 전했지요. 인공지능의 학습을 위해서는 당연히 빅데이터가 활용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추론해볼 수 있어요.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하면 불법촬영물을 보다 빠르게 식별할 수 있을 것이고 나아가 사람이 불법촬영물을 찾아낼 때 생기는 심적 고통도 덜 수 있어요. 이는 빠른 삭제 지원으로 이어질 것이고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가 일상으로 돌아오는 데에 도움을 줄 것입니다.
‘N번방’과 같은 디지털 성범죄가 큰 문제로 충격을 준 지도 꽤 시간이 흘렀지요. 디지털 성범죄의 시작이기도 한 ‘몸캠피싱’에 대해 빅데이터 분석을 실시한 자료를 보면,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디지털 성범죄가 크게 증가했다고 합니다. 앞선 사례들은 디지털 성범죄를 예방하거나 피해자의 일상회복을 돕기 위한 장치 들이었지요. 이는 빅데이터가 실생활에서 디지털 성폭력 예방에 도움을 주는 사례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할까요? 여기에서 젠더 폭력 전반에 대한 이해를 높이며 해결 방법을 모색해보면 좋겠습니다. 젠더 폭력이란 젠더에 기반한 폭력을 말합니다. 성폭력이나 가정폭력이 대표적이지만 사실 여성만이 아니라 남성이나 성소수자를 향할 수도 있어요. 군에서 남성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이 남성 대상 젠더 폭력의 한 예입니다. 유엔은 1993년 여성에 대한 폭력 철폐 선언을 채택했는데 여기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을 ‘남녀간 불평등한 힘의 관계에서 발생해 여성의 종속적 지위를 고착’시킨다고 보고 있어요. 즉 개인 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보아야 한다는 점을 알 수 있지요. 말씀드리려는 부분은 바로 이 지점이었습니다.
[그림2] 여성에 대한 폭력 철폐 선언 갈무리 (출처: 유엔)
디지털 성범죄라는 최근 화두를 통해 젠더폭력에 대한 우리의 자세를 한번 살펴보면 어떨까요? 앞서 언급한 2019년 경찰청 보도자료에는 다음과 같은 가상 사례가 언급됩니다.
”출근 중인 A씨, 오늘도 여전히 붐빌 지하철역을 생각하면 A씨는 벌써부터 기분이 안 좋다. 얼마 전 원피스를 입고 가파른 지하철 계단을 올라가다 일명 ‘몰카’라는 어이없는 피해를 당했기 때문이다. 무슨 방법이 없나 고심하던 중, 최근 경찰청에서 제공하고 있다는 ‘안심맵’이 문득 떠올랐다. 혹시나 해서 휴대폰으로 사이버경찰청에 접속해보니, 서울시내 지하철 역 곳곳의 불법촬영 위험을 붉은색으로 선명하게 알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하! 평소 다니던 길로만 다니던 A씨, ‘안심맵’의 정보로 다른 출구를 선택해서 올라가니 평소 속수무책으로만 느껴졌던 ‘몰카’ 피해를 내가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벌써부터 든든해진다.”
우리가 원하는 사회는 개인이 위험을 알아서 인지하고 안전한 길을 찾아다니기보다 어떤 길이든 안전하게 다니는 것입니다. 결국 이런 기술은 빅데이터를 통해 인사이트를 주고 일부 도움이 되는 것은 맞지만 위험의 개인화에 일조하는 문제도 있어 보입니다.
또 불법촬영물 삭제는 어떨까요? 추적단 불꽃과 앰네스티가 기획하여 2021년 연재했던 4부작 글들(1부, 2부, 3부, 4부)을 보면 삭제의 마지막 여정에는 플랫폼 기업이 있으며 이들은 삭제에 미온적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는 지금도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중입니다.
[그림3] 출처: 국제앰네스티, 추적단불꽃, <‘n번방’ 1년, 남은 질문들 ③ 피해자의 일상회복을 방해하는 자, 누구인가>
이쯤에서 궁금해질 것 같네요. 그렇다면 각자가 위험할 회피할 여지도 주지 말라는 것인가? 또는 플랫폼 기업이 문제이니 불법촬영물 식별을 하는 것이 불필요하다는 것인가? 당연히 아닙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다거나 인식 수준이 좁아져선 안 된다는 말씀을 드리려는 겁니다.
바로 ‘구조적 문제’에 대한 인식과 해결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디지털 성폭력은 지난 2022년에도 학교에서, 지하철 화장실에서, 대낮 길거리에서 여성이 살해당한 사례들에서처럼, 여성을 그 자체로 존중하지 않고 비하하고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사회 전반의 맥락과 닿아 있어요. 성착취물이 ‘남자라면 볼 수 있는 야동’으로 받아들여지고, 여성에 대한 구조적 차별을 애써 외면하고, 기업이 여성의 고통은 외면해도 돈을 벌 수 있는 환경에서는 앞으로도 이전처럼 젠더 폭력이 무럭무럭 자라날 겁니다. 다가오는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입니다. 어떤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지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그리고 그 문제의식을 수용하여 빅데이터가 추가로 해나갈 역할들을 함께 이야기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