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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빅잡]젠더와 빅데이터 - 미디어 분석, 젠더 데이터가 말해주는 것

등록일 2023-01-31

[연재기고]

빅데이터로 본 젠더 이슈

미디어 분석, 젠더 데이터가 말해주는 것

- '젠더갈등'이라는 유령을 넘어서 -

최정호
빅데이터 혁신공유대학 사업단 / 법학박사

 

최근 몇 년 사이 젠더는 굉장한 사회갈등 요소처럼 부각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4월 빅데이터에 기반한 어느 보도내용을 보면, 지난해 1분기 사회갈등지수는 2018년의 두 배에 달한다고 합니다. 진영 갈등이 전체의 64%로 압도적 점유율을 보였고, 그에 이어 젠더(14%), 세대와 불평등(각 9%), 일터(4%) 순이었습니다. 같은 시기 한 세미나에서 논의된 조사결과에서도 우리 사회의 젠더갈등이 심각하다는 응답자가 71%에 달했습니다. 특히 20대에서는 90%로 집계되었는데, 이는 전년도 대비 15% 증가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여성가족부 폐지론이 대선 공약으로 등장하고 유력 정당들이 각각 20대 여성과 남성을 대변하는 듯한 대립구도를 보였으며, 대선 이후에는 여성가족부 폐지가 실제 법안으로 제출되기도 하는 등 분위기는 점점 더 고조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두고 빅데이터 분석과 통계가 뒷받침하는 과학적으로 분석된 사실이라고 간단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어 보입니다. 즉 분석 결과가 보여준 현상은 실제로 존재하지만 동시에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측면도 있습니다. 간단한 검색만으로도 각 언론매체와 국책연구기관에서 분석한 바에 따르면, 이른바 ‘젠더갈등’이라 불리는 이 현상에는 코드화되어 정치권에서 이용하고 미디어에서 무비판적으로 보도하는 문제가 얽혀 있습니다.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김수아 교수는 “20대 청년 남성들에게서 나타나는 사회에 대한 관점과 그 의미는 충분한 사회적 논의의 대상이 되어야 하지만, 오히려 보수 언론의 의제화가 더 중요하게 작동하면서 현 정권*에 대한 찬성과 반대, 지지 여부라는 방식으로만 청년의 목소리가 동원되는 방식이 나타났다”고 지적했습니다.

(* 글쓴이 주 : 2022년 4월에 이루어진 인터뷰 내용이므로 지난 정권을 뜻합니다. 하지만 현재 이 표현을 그대로 써도 의미 왜곡은 없어 보입니다.)

 

[그림 1] 젠더 이슈 관련 온라인 남초 커뮤니티 게시글 변화 추이(일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소셜 빅데이터를 통해 본 2021년 상반기 젠더갈등 논의 양상’에 게재된 표를 토대로 언론사가 주요 시기를 표시한 편집자료임.
출처: “남초커뮤니티의 ‘젠더 갈등’ 폭증, 지난해 4월부터 정치와 밀착”, 한겨레, 2022.4.8.)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연구보고서에서도 남초 커뮤니티에 게재된 젠더 관련 게시글을 양적 분석, 빈출 키워드 분석, 토픽 모델링 분석을 수행한 결과 정치·선거 관련 논의와 거의 밀착된 양상을 보였음을 분석했습니다. 이에 향후 성평등 정책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성별간 대립을 부추기는 정치구도를 넘어서기 위한 논의가 이뤄져야 함을 주장했습니다.

 

이때 성평등 이슈를 왜곡하려는 일부 세력과 이를 이용하는 정치권 외에 언론도 한 몫을 하고 있다고 분석됩니다. 이른바 ‘이대남’ 담론이 나온 뒤 얼마 되지 않아 일부 언론에서 ‘20대 남성이 여성우대 정책으로 인한 역차별 때문에 대통령 지지를 철회한다’는 식의 주장을 담은 보도를 내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이어 앞서 언급된 정당 지지율을 비롯한 특정 이슈로 환원시켰다고 합니다. 그러한 것으로는 정당 지지율, 인성론 같은 것이 있고, 때로는 ‘갈등’을 열심히 중계해주었다는 비판도 받습니다, 빅데이터를 활용한 또 다른 분석 결과도 눈에 띕니다. 토픽 모델링 기법 등을 통해 포털 사이트 기사를 분석한 결과, 한국언론은 권력형 성폭력의 성차별 구조에 대한 보도보다 성폭행이라는 행위 자체에 집중했고, 그 과정에서 미투 사건에서 가해자의 악마화, ‘젠더갈등’ 이슈로 치환되는 데에 그쳤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현실은 어떨까요? 우선 부끄럽게도 ‘역차별’ 이야기가 나오기엔 한국은 성평등 측면에서 너무나도 부족한 나라입니다. 우리나라 여성과 남성의 시간당 임금 격차는 2020년 기준 32.5%(여성 임금이 남성 임금의 70% 수준이라는 뜻)로 OECD 평균 격차인 12.5%보다 높은 것은 물론이고 우리가 OECD에 가입한 1996년 이래 줄곧 꼴찌입니다. 유리천장 지수도 10년째 꼴찌입니다. 대한민국의 기본질서이자 국민의 기본적 권리와 그것을 보장할 국가의 의무를 규정한 헌법에서 평등권을 규정하고, 심지어 여성 근로자의 차별금지, 혼인과 가족생활에서의 양성평등과 같이 여성에 대한 차별금지를 직접 언급하는 조항도 있지만 아직 실현되려면 갈 길이 멉니다.

 

[그림 1][그림 2] 한국과 OECD 평균 임금격차 연도별 비교 (출처: OECD 홈페이지)

 

게다가 이른바 ‘이대남’의 실체도 불분명합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2022년 3월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20대 남성들은 스스로가 ‘이대남’이라고 인식하기보다(23%), 이대남이 아니라거나(37%) 잘 모르겠다(40%)고 대답했습니다. ‘이대남’이라는 용어 사용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보는 입장이 높았고(71%), 이 현상의 본질에 대해서는 세대·성별 갈라치기 프레임(83%)이라거나 언론보도 등에 의해 확대·재생산됐다(82%)는 입장이 우세했습니다.

 

[그림 3] 이대남에 대한 인식 (출처: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 ‘‘이대남’ 현상에 대한 인식’)

 

결국 여러 빅데이터 분석을 종합해보자면 ‘젠더갈등’은 실체가 있다기보단 왜곡된 사회적 구성물에 가깝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정치세력의 ‘갈라치기’에 맞설 줄 알아야 하고, 미디어가 기계적 대립구도를 전파하며 비평적 기능을 못 한 것을 비판할 수 있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구조적 문제에 대한 각 부문의 개혁이 필요합니다. 하나 덧붙이고 싶은 것은 같은 현상에 대한 빅데이터 분석을 실시했음에도 어떤 때에는 ‘젠더갈등’을 심각한 문제로 보는 결론을 내기도 하고, 또 어떤 때에는 문제의 본질을 캐내기도 했다는 점에 주목했으면 합니다. 이 점을 인식한다면, 우리에게는 데이터 리터러시가 필요하다는 생각에도 이르게 됩니다.